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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공대 졸업과 그 이후

#KOR#Daily
2026.05.05.

0. 방문해주신 분들께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새 이 블로그의 존재를 잊고 산지도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가끔 메일함을 확인하며 시간이 나는대로, 제 나름 연락을 주신 분들께 하나하나 답장을 드리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모든 분들에게 회신을 드리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중간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Github Pages 업데이트로 제 메일서버랑 연결이 해제되는 바람에 몇 건은 누락되었었네요(…) 죄송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제 삶에도, 커리어에도, 또 이 세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AI는 제가 이 글들을 작성하던 1년 반 전과 비교하기 무색할 정도로 저희의 삶에 침투했고, 많은 부분들을 자동화했으며, 코딩이라는 세계로의 접근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쉽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과거에 제 Working Cycle의 병목이었던 부분을 AI로 빠르게 해결하며, 전보다도 훨씬 더 코딩과 문제해결이라는 세계에 매력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 만큼 사이버보안에 대한 위협도 커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큽니다. 날마다 빨라져가는 Producing Cycle에 의한 엄격히 검수되지 않은 제품들의 생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코딩 블럭들, 그리고 일부 바이브코더들의 기본 컴퓨터공학 상식의 부재에 기안한 보안의 허점. 또한 AI와 해커들의 시너지로 더 진보된 공격 기법들. 이 모든 것들이 사이버세계의 국면을 속도전으로 몰고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사이버 보안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매일 새로운 걱정이 생기는 나날들입니다.

개인적인 성취 또한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거의 마무리단계에 있었지만, 저는 7학기의 학사논문을 마지막으로 뮌헨공대 Informatik 3년간의 학사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논문과 Specialization은 당연히 정보보안, IT Security입니다 :) 현재는 뮌헨공대 Informatik - IT Security Track 석사과정 재학중에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현재 3년차로 계속 근무중이며, 몇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중입니다. 개발 프로젝트도 있고, 해킹관련 프로젝트도 있는데 자세히는 아쉽게도 나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사용하는 해킹기법이나 정찰론(OSINT, 제 주 분야입니다)은 추후에 한 번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은 독일 유학과 뮌헨공대, 그리고 직장생활등등, 지금까지 나누지 못했던 번외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1. Leistung, 성취에 대한 강박

독일 유학은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특이 비(非)예능계열 유학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입학과 졸업이 쉬워지는 석사부터는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있고 외국 유학생들이 주축으로 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있지만, 학사 유학의 경우에는 외국인의 입학이 쉽지 않은 관계로 이와 같은 정보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인기가 많은 공대라도 외국인 입학조건은 다르지 않으니 예외가 아니다.

혹시라도 조기유학, 즉, 아비투어를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대략적인 그림조차 잡기 어려울 수 있다.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누구나 공평하게 시험을 치루며, 누구나 공평하게 시험에서 낙방한다.

또한,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자유롭다. 그게 고등학교가 되었든 대학교가 되었든 최소한의 틀을 제공하되, 그 외의 것은 학생에게 일임한다. 학생은 이 틀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주어지되, 그 책임 또한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척 듣기엔 진취적인 시스템이지만, 방금 언급한 외국인 유학생으로서의 정보부족이 더해지면 하나의 잔인함이 생긴다.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는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정보도 없고, 언어도 부족하며, 자국의 아이들조차 떨어지고 울며 좌절하는게 일상인 시스템의 소용돌이 안에서,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 방향이 나를 낙제로, 실패자의 길로 인도하고 있지 않음을 나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나는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김나지움시절부터 군생활을 거쳐 뮌헨공대 졸업을 하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다. 노력의 여부와 무관한 무지의 세계서부터 나오는 막연한 공포, 그리고 그걸 이겨내기 위한 성취를 향한 강박. 아마 나 뿐만 아닌, 많은 유학생들이 이와 같은 공포심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중 누군가는 다리를 스스로 폭파시키고 새로운 땅으로 넘어왔고,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기에, 이런 고민은 정당하다.

이러한 고민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취를 얻는 것이다. 다음 시험을 통과하고, 다음 대학 랭킹에서 우리 학교가 랭킹이 더 올라가면 내 스펙을 구글링해보며 자기 위안을 얻는다.

2. 유학의 한 페이지를 마치며 깨달은 것

이런 고민과 강박이 언제나 정신의 약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그만큼 스스로의 삶에 관해 자주적이고 또 책임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해 본 결과, 한 번 이 굴레에 빠지면 무엇을 성취하더라도 그러한 공포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혹자는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고통은 때때로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공포는 그렇지 않다. 계속되는 공포와 불안감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고, 나아갈 의지를 상실하게 한다.

아비투어를 공부할 당시, 나는 외국인 재학생이라고는 나 하나뿐인 시골 김나지움에 다녔고, 아무런 입시정보를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건 과목 별 아비투어 참고서 다섯 권. 그 때에 나는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아비투어에 떨어지고 한국에 들어가 21살에 검정고시를 치고있는 악몽이었다.

아비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군생활을 할 때에는 어땠을까. 군대 전역 후 인턴십기간을 포함한 2년 반을 지내며 몇몇 독일 친구들은 졸업까지 해버린 상황에 나만 뒤쳐졌다는 상실감과 너무 공부를 오래 쉬어버렸다는, 또한 그 2년 반동안 미래에 입학할 뮌헨공대에 대해 “너무 많이” 조사하며 들은 수많은 괴담을 통해 형성된 과장된 난이도를 Wahrnehmen 해버림으로서 생겨버린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뮌헨공대를 입학한 후에는 어떠한가? 1학년의 GOP, 2학년의 THEO, 3학년 마지막의 논문 제출에 이르기까지 압박감과 강박은 천천히 줄어들지언정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뮌헨공대 생활을 해 나가면서도, 나는 쉬지 못했다. 학교만 다녀서는 취업에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1학년때부터 어떻게든 직장에 들어갔고, 좋으나 싫으나 절대로 주 20시간 밑으로 업무시간을 떨어뜨리지 않으며 방학에는 40시간, 1년에 60% 직장인의 기준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혹시라도 내 인사평가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걱정했던 것 처럼 나락에 떨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여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이러한 공포감에서 해방된 걸 자축하고자, 또 이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작성한 것이 이 회고록이었다.

그래서, 내가 뭘 깨달았다는 걸까? 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 독일에서의 대학교 입시방법? 학사를 수월하게 통과하는 방법? 이것들은 모두 부차적이고, 개개인에 따라 모두 다른 방법들이다. 나의 방법이 다른 사람들에게 통한다는 방증은 없을 뿐더러, 내 방법 또한 다른 회고록편에 충분히 적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절대적인 시간의 투자가 있다면 아비투어가 되었든, 어떤 학사 과목이 되었든 100% 통과가 가능하다. 만약 자신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축하할 일이다. 자신에게 절대로 맞지 않는 길을 평생 업으로 삼는 끔찍한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일 시스템의 잔인한 점이며, 동시의 강점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난 아직 인생의 선배라고 부를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유학을 하며 시궁창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하고싶다.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만은 않을거야.

꾸역꾸역 살아남기만 했을까? 얼마전까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내 동료들, 내 친구들과 이야기해본 ‘나’라는 사람은 달랐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나열하니 정말정말 부끄럽지만, 얼마 전 여러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며 실제로 들은 이야기이다. 내 스스로 평가하던 나와 내 친구들이 평가하던 내가 얼마나 다르던지, 스스로에게 많이 미안했다. 맘졸이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겨우겨우 해내왔다고 생각하던 시간들이, 내 생각보다도 더 멀리 나를 데려가고 있었다.

마음도 좀 편하게 먹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했었어도, 아마 충분했을거다. 너무 스스로를 불안속에 밀어넣지 않아도,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지금까지 살아남고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이미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여러분들이 더 대단함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넣기보단, 자신이 이룬 것들을, 또 자신의 능력을 조금 더 믿고, 하루 정도는 아무 생각 말고, 편하게 눈을 감고 쉬어보는게 유학 생활의 즐거움이란걸 깨달았다.

3. 마치며

이렇게 글을 썼지만, 앞으로도 나는 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고, 나는 어쩌면 이러한 압박감으로서 완전히 자유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래의 불확실성, AI의 발전과 세계경제의 불황.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은 늘어만 갈 테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앞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 또한 늘어만 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진은 어떻게 할지, 내 밥그릇을 어떻게 지킬지, 또 미래의 처자식은 어떻게 먹여살릴지(…) 아마 불안할 요소들은 인생 가시밭길의 가시 수 만큼 많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10년은 나를 조금은 더 부드럽게, 여유롭게, 어쩌면 이 불안함을 내 경쟁력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성장시켰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이, 열심히 살아가고있는 여러분들에게도 반드시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무엇을 먹고 마실지, 너무 고민하지 말자.

5. 후기

회고록 성격의 글의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일년 반이 지난 후에 쓰는 글이다 보니, 어쩌다보니 2년간의 시리즈물이 되어버렸네요. 그만큼 많은 생각을 눌러담아 글이 추상적이 되어버린 것 같아, 정보글을 기대하고 온 분들에게는 헛걸음을 하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네요.

유학이란 돈이 많던 적던, 즐거웠던 힘들었던 누구나 그만의 고충을 가지고 수많은 에피소드를 겪으며 통과하게 됩니다. 누구나 누릴 수 없는 호사이지만,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수 없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고뇌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호화스러운 고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생 여러분, 특히 독일 유학생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 늘 응원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응원 많이 필요합니다. 세상 다 산것처럼 글 써놨지만 저도 아직 갈 길이 구만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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